산악인 윤재학의 인터뷰

“자기 힘으로, 기업도 인생도 올바르게”

내년 코오롱등산학교가 40주년을 맞는다. 산을 묵직하게 증거하는 윤재학 교장을 만나고 싶었다. 그의 지혜가 다시 한 번 더 전달된다면, 코오롱등산학교가 앞으로도 굳건히 이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북한산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형형한 눈빛에 눈이 부셨고, 목소리는 상상하는 것보다 더 패기가 있었으며, 키는 작았지만 소나무처럼 곧고 단단했다.

“산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아요. 하지만 큰 위안처가 될 수 있거든.”

계절이 바뀌어 볕이 따갑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계절의 산행을 가장 사랑하시나요?

"계절마다 다 좋아요. 산을 좋아하다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각 계절이 저마다의 매력이 있어요. 비 오는 날의 운치도 대단해요. 저 멀리 산과 나 사이에 비가 쏟아질 때 그 느낌이 참 좋거든. 가끔은 예전에 백운산장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맞은편 능선을 바라보던 그 순간이 떠올라요. 그때 느꼈던 마음의 평온함과 안락함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언제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산은 늘 그대로지만, 우리는 인생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존재니까 그런 점이 아쉽기도 하죠."

산이 주는 즐거움 중 가장 공감받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산이 주는 즐거움에 늘 고마워요. 먹고사는 문제에 충실하면서도 여가의 즐거움은 언제나 산이었고, 그 산의 대부분은 코오롱등산학교와 함께였어요. 산에 오르면 일상의 고민이 잊혀지고, 산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걱정이 사라져요. 그러고보면 산은 제 인생의 큰 행운의 열쇠인거에요. 코오롱등산학교 덕분에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에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산이 주는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즐겁게 살아오셨습니다. 이 여정이 선생님의 ‘자기다움'을 이어주는 길이 되었나요?

"열심히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엄청난 즐거움이었요. 직장 생활에서도, 산에서도, 모든 삶의 영역에서 더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히말라야를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낮은 산에서도 충분히 행복을 느꼈고, 지금도 등반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나이 들어서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거든. 등산학교에서도 나 같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산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어떤 추억을 남겨줄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요. 강사들이 등산학교에 오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야."

산에 몰두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산을 대하는 마음은 어떠해야 합니까?

"초기 알피니즘 시절에는 산행이 지식인들이 하는 행위였어요. 산을 대할 때는 사람을 대하듯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해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함께 고생하며 야영하면서 차 한잔, 술 한잔 나누며 산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요즘은 그런 문화가 많이 사라진 것 같거든. 허허." (사진: 코오롱등산학교 1기 졸업사진)

고도에 따라 극복해야 할 어려움도 달라지듯, 산도 삶도 불확실성으로 가득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등반하며 여러 번 다치기도 했어요. 다친 후에도 의지가 꺾이지 않고 다시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최상의 힘을 냅니다. 사업에서 힘들 때도 주말에 산에 가서 쉴 수 있다는 생각이 힘이 되었어요. 올해 74세인데 나도 아직 체력이 있고 산을 좋아하니까 현장에서 계속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등산학교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고 믿어요. 그게 내 몫이에요. 나는 늘 산악인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클래식한 등반을 하는 알피니스트로요."

코오롱등산학교는 어떤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등산학교는 단순히 등산 기술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사회교육 기관이라고 생각해요. 성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라는 거죠. 경쟁보다는 함께하는 문화를 배우며, 희생, 양보, 협동의 가치를 실천하는 곳이에요. 이것이 알피니즘 정신이거든. 등산학교는 등산문화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요."

강사를 뽑을 때 어떤 점을 보시는지요?

"강사로서 등반 능력만 있으면 안 돼요. 인성도 중요해. 학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거든. 배우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도록 소통의 방법을 배워야 해요. 삶의 철학까지 배우고 싶어 하는 모범적인 사람이어야 하죠. 스승은 학생들이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과 철학까지 배우고 싶어하는 존재이거든. 저렇게 살고 싶다는 느낌을 줄 만큼 모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나 그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강사를 영입할 때는 그 사람의 장점을 잘 살펴봐야 해요. 장점에 맞는 업무를 맡겨 잘 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죠. 지금 보면 우리 코오롱등산학교의 인재 풀이 참 훌륭해."

코오롱등산학교에 오시는 분들은 어떤 추억을 가지고 가나요?

"코오롱등산학교에 오는 사람들 99%가 좋은 추억을 가지고 돌아가요. 요즘엔 솟솟클럽에서도 재미있는 추억을 남겨주잖아. 단순한 등산 기술 교육을 넘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기관으로 기억되었으면 해요. 알피니즘 덕목 중에 ‘바이 페어 민즈(by fair means)’라는 말이 있어요. 순수한 자기 힘으로 산을 오르려고 하는 정신을 의미하는데, 삶에서도 이러한 정신을 지키며 올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잖아요. 이 정신이 기업의 목표이자, 삶의 목표이고,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가. 나는 코오롱등산학교가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랍니다. 이러한 노력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AI가 발전하는 시대에 산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모든 수준이 높아졌어요. 그만큼 삶이 더 치열해졌죠. 시대가 어려울수록 산을 도피처로 삼기보다는 위안을 얻는 곳으로 생각해야 해요. 산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충전해서 경쟁의 세계로 나아가야죠. 산에는 위험한 순간도 많지만, 힘들 때도 열심히 했던 기억이 더 잘할 수 있는 힘을 주거든요. 산은 사람들에게 그런 역할을 해줘요. 산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아. 하지만 큰 위안처가 될 수 있거든."

"산은 더 잘할 수 있는 힘을 주거든."

판단하려면, 사랑하려면, 사철의 전체를 두루 겪어볼 수 있어야 한다. 산이 하는 역할에 감사하고 세상과의 접점을 정성껏 확장해 가는 사람. 30살 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의 예의 바른 태도에는 산과 같은 강건함, 총명함, 그리고 다정함의 기품이 깃들어 있었다. 맑고 강한 자존감에서 발현되는 자애롭고 절제된 눈빛, 깊이 있는 헤아림이야말로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하는 진짜 어른의 위안과 롤모델의 모습일 것이다.

Q&A

산행 경력은요?

1985년 코오롱등산학교 1기로 입문해 1988년부터 강사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30여 년간 코오롱등산학교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코오롱은 나에게 매우 고마운 존재예요.

코오롱스포츠 제품 중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은요?

릿지화가 정말 훌륭해요. 한국 지형과 바위에서 참 좋아.

친구분들이 말하는 윤재학의 모습은요?

사람들이 나 보고 그래요, ‘스탠다드’하고 ‘독일 병정 같다’고. 너무 철저하게 하려고 한다고들. 이런 평가를 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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