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의 거벽을 보존하는 산악인들, 양유석과의 대화

야생성을 지키는 몰입의 세계

암벽 루트를 개보수하는 건 알피니스트의 마음 산은 내게 ‘곤란한 놀이터'. 자연은 위험하고 불확실한 세계 공포를 마주할 때 가장 큰 몰입감 느껴 등반은 수직 수평의 세계를 조금씩 확장해가는 즐거움

얼마전 설악산 울산바위 루트 유지보수 작업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온 몸으로 암벽을 올라가며 루트를 개척하고 보수하는 작업. 일년에 주기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바위와 아웃도어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암벽 보수 작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온전히 착실하게 한 길만을 걸어온 산악인 양유석, 현 코오롱등산학교의 교무이자 중앙119 구조단 명예교관이다. 북한산에 갔다. 코오롱등산학교는 산 밑에 있었다. 양유석을 처음 인터뷰하기 전에, 그에게 떠올린 이미지는 산에서 절로 나서 자랐을 것 같은 ‘야생성, 산, 선하다’였다. 한 겨울에도 햇빛으로 단단하게 여문 양유석의 얼굴은 한 여름의 시골 간이역처럼 여유롭고 정겨웠다. 무엇보다 바윗길 개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는 순하고 정직한 언어로 내놓았다.
작년에는 노적봉의 오래된 길을 정비했고, 올해도 봄에 낙석 점검기간에 등산학교 선생님들과 함께했어요. 무거운 장비를 모두 지고 올라가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에요. 우리가 개척했던 길, 다른 사람이 개척했는데 너무 노후화 된 길은 개보수를 해요. 오래된 길들이라 철로 된 피톤들은 2~30년되면 녹슬기 때문에 스테인리스로 교체하고, 풀려진 볼트를 꽉 조여주기도 하고, 위험한 낙석들은 치워줘요. 나말고 누군가 이 길을 안전하게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보수작업을 하는건 보상을 바라지는 않아요. 알피니스트의 사명감같은 것도 있어요. 알피니스트들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는 암묵적인 문화와도 같은거죠.

무섭지는 않나요?

녹슨 볼트가 부러지고 부식된 피톤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기에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들은 정기적으로 개보수 작업을 한다. 거친 바위를 훑는 세심한 손길과 그 속에서 오고간 자연과의 교감. 크랙을 따라 발밑이 시원하게 뚫려있을 고도의 끝자락에 매달려서 등반가로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볼트 교체 노력 덕분에 일반인들은 안전하게 자신의 몸을 맡길 것이다.
위험하고 죽을 것 같기 때문에 내가 가진 역량을 다 끌어와 써야해요. 그러면서 수직의 세계로 수평의 세계로 조금씩 확장해가는 거죠. 등반은 몰입의 세계가 꽤 커요. 몰입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해주는 게 공포에요. 아드레날린 도파민이 나오는 것도 모두 엄청난 몰입을 통해서죠. 처음에는 그게 명상이라고 생각했어요. 몰입하는 순간 순수해져요. 산에 들어가는 순간 본능적이 되는, 그 단순함에 몰입할 수 있거든요. 산, 사람, 자연을 통해서 내가 좀 더 순수해지고 비워내는 느낌이 있어요.

루트마다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노란 잠수함, 토종닭, 맘모스 크랙, 찬란한 고독..’
처음 개척한 사람들이 이름을 짓는데 개인이나 산악회에서 만든 이름들이 많아요. ‘변소금지’는 사람들이 소변을 많이 보는 곳이라 하여 재미있게 지어준 거죠. ‘석이농장’은 석이버섯이 많아서, 금강굴이 있는 곳은 ‘금강길’.

가장 좋아하는 루트가 있나요?

인수봉만 해도 110여개가 있다고 들었다. 두려움은 상황에 경도되어야만 대처할 수 있다. 무뎌져버린 감각을 일깨우고 신체가 깨어나면 또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졌던 옛 등반의 기억을 떠올렸다.
바위하는 행위는 똑같아요. 좋아하는 루트가 있다기보다 산 전체가 좋은 거에요. 그 안에 있을 때 느끼는 자연의 거대함, 압도적인 대자연 앞에서 입이 딱 벌어지고 티끌만해지는 자신을 보며 절로 숙연해지는, 그리고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의 반복.

즐겁다는 것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나요?

알피니스트의 자세로 필수적인 것이 로프로 서로 연결되는 ‘팀 스피릿(team spirit)’이다. ‘덕분에, 함께’여서 서로의 믿음으로 등반을 한다. 간절한 바람을 같이 해주는 든든한 파티와의 관계성. 위험이 오히려 관계를 응집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완등의 기쁨은 자연스럽게 공동의 성취감으로 완성된다.
익스트림 스포츠 중에서 상대방과 나를 연결하는 건 클라이밍이 유일해요. 그래서 추락해도 죽지 않는다는 전제를 가지고 하죠. 혼자서 가는 일은 극도로 드물어요.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밑에 있는 사람도 나와 같은 호흡으로 집중하죠, 저 사람이 힘든가. 자기 파티가 보이지 않아도 줄의 움직임만으로도 이 사람이 난관에 봉착했는가를 알 수 있어요. 추락할 수 있으니 대비하기도 하는거죠. 서로 정한 신호로 함께 등반할 준비를 해요. 로프가 그래서 클라이머에게는 매우 중요한 생명의 줄이자 연결, 소통의 줄이에요. 그래서 지상에서 발이 떨어지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안전해요. 서로를 연결하는 줄이 있기 때문에.

학생을 가르칠 땐 어떤 메시지를 전하나요?

수직의 세계에서는 등반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엄청난 크기의 공포가 서로 줄다리기를 한다. 등반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공포를 완전히 떨쳐버려야 한다고 했다. 두려움과 친구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나 현실의 두려움은 삶을 사랑함으로써만 대처가 가능하듯이.
(미소지으며)우리가 등산학교에서 알려주고 싶은 건 여러분의 등반 영역이 넓혀졌으면 좋겠다에요, 그게 걷는 영역이든 클라이밍이든. 의식주의 이전이기 때문에 길 찾기, 밥먹기, 잠자기부터 시작해요. 그리고 그 다음이 수직의 세계로 들어서는데 그때는 알아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기술적인 것에서 마지막에는 정신적인 부분까지. 무섭거든요. 내가 공포와 마주했을 때 져버리면 못 올라가는 거니까.

강사를 뽑는 기준이 있습니까?

자신의 경험치요, 산을 대하는 태도를 봐요. 어려운 것을 등반한 걸 뽐내는 것이 아닌 자기가 왜 산을 좋아하는지, 왜 등반을 좋아하는지, 자기가 좋아하는 산을 위해 뭘 했는지를요. 힘들고 고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좋았던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죠. 우리가 테크로 무장하고 있지만 테크만 가르치지는 않거든요. 결국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게끔 해주는 건 강사의 역할이 크기에 학생들과 어떻게 호흡하는지 얼마나 진솔하게 대하는지가 중요한 덕목이에요.

산이라는 야생성, 몰입의 세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중력을 거스르고 본능적으로 우주적인 깨달음에 나침반을 두고 있는 사람. 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지상에서 부여받은 삶을 즐기고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권고한다. 삶을 단순화하면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는다.
(웃으며)재미있어서요. 야생성, 몰입을 유지하는 이유는 재미있어서에요. 그리고 등반은 학생도 사람들도 같이하지만 상대방에게 기대하지 않아요. 그래서 편안한 부분이 많아요. 산이라는 더 크게 말하면 자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어서 오히려 더 순수하고요. 제일 중요한 건 산, 사람, 그 안에서 놀기위한 도전. 이 세가지가 잘 버무려져 있으면 행위하는 사람들의 공동 목표가 되고 자연스럽게 소통이 되요. 어렵고 위험하니 서로 도와주고 응원해주고요. 공동의 목표가 자연이고, 자연은 곤란함과 불편함을 주는 건데 우리가 선택한거니 재미있고 그 중에서도 몰입의 재미가 심리적으로 큰 거죠.

오늘 하루도 잘 놀았다고.

오늘과 내일의 등반가들과 등반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광활한 황야를 원하든 우뚝 솟은 인수봉의 절벽을 원하든 이 땅과 이 땅을 독특하게 만든 모든 자연의 경이로움을 전하는 사람. 놀라운 땅을 보호하고 보존하고 깍아지른 절벽에서의 공포를 몰입으로 승화시키며 즐거운 자극으로 전환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확장해가는 양유석.
그를 필두로 등산학교 강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강력한 추진력을 얻는다. 덕분에 등산학교 수료생들은 야생이라는 자연의 역동성 앞에서 그 자체를 존중하고 향유하는 법을 배우면서 그렇게 감각적이 된다. 고되고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외양 뒤에 숨겨진 자연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공명하는 매 순간, 양유석은 이런 마음가짐일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잘 놀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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